[즐거운 책읽기] 손재권 기자의 파괴자들 (Disruptors)

매일경제의 손재권 기자가 2012년 8월 부터 2013년 7월까지 스탠포드 대학의 아태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동안 그가 보고, 느끼고, 체험했던 실리콘 밸리와 미국 IT 산업,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이 책은 실리콘 밸리를 다녀오지 못했거나 한 동안 들여다 보지 못한 사람에게 현재 어떤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 가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개발자, 창업자, 전략 기획 수립자, 기업인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또한, 나처럼 매일 이 곳에서 어떤 혁신이 발생하고, 논의되고, 또 변화되는 가를 추적하는 사람에게도 다시 한 번 전체적인 그림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1부에서 세상을 바꾸는 키워드, 2부는 영역을 넘어서는 혁신의 시대를 만드는 기업들, 3부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가는 기업, 주제, 사람들, 4부는 현재 실리콘 밸리를 이끌어가는 방법론, 마지막 5부는 혁신적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기술과 문화, 생각이 어떻게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지는 2013년이 끝나고 2014년이 시작하는 현 시점에서 어떤 변화를 읽고 준비해야 하는지, 왜 그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마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이런 회오리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노력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이 책을 봐야 할 것 같다.

기술 흐름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도 주제를 고르고, 혁신의 원동력이나 주요 주체를 고른다면 손기자가 선택한 리스트와 95% 이상 동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올해 내가 잡았던 주요 키워드 역시 이 책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산업부 기자가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내용을 소화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정리해 놓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 것이 실리콘 밸리라는 장소가 갖고 있는 커다란 힘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탠포드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강의와 토론, 실험적 교육이 손 기자에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병기 위원이 추천사에 썼던 마치 ‘종군기자’처럼 뛰어다닌 듯한 모습니다.

짧은 일년이라는 기간동안 그가 참석한 모임이나 컨퍼런스, 미디어 데이, 각종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실리콘 밸리 스타일로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에서 몇 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 여기서는 단지 몇 개월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나 트렌드에 필요한 다양한 데이터와 현황 자료도 충분히 제공하고 있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좀 더 그 배경이나 문화, 움직이는 힘들 (특히 투자자의 역할 등), 정책 수립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인사이트들이 보완되어 다음 버전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몇 가지 작은 오류나 나와 바라다 보는 시각 차이는 있으나,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아무 무리가 없다. 특히 커넥티브 북이라는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첨가한다고 하니 더욱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저널리즘이 한국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새로운 출판 방식은 이렇게 혁신적 작가이자 기자로 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 근데 왜 손기자는 내게 추천사를 부탁하지 않았을까? 잘 써줬을텐데.

스타트업 위한 아시아 테크허브 만들자

[2013년 11월 28일자 전자신문 ET칼럼에 기재된 글]

최근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그램 멘토 자격으로 런던과 실리콘밸리를 2주간 다녀왔다. 선발된 5개 스타트업과 함께 해외 투자자,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인큐베이션 센터, 새로운 생태계 구성을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신선한 도전이고,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런던과 실리콘밸리는 모두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훌륭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실천방법에서는 차이가 많았다. 런던은 형성돼가는 생태계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테크시티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적 지원과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어우러져 있지만, 실리콘밸리는 오랜 기간 민간 중심으로 형성된 환경에 의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런던은 자국 스타트업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인력들을 유입시켜 유럽의 디지털 허브를 꿈꾼다. 이스트 런던 지역은 기존의 디지털 미디어나 창조적 전통을 바탕으로 이미 1300여개의 회사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CBS가 인수한 라스트에프엠, 트위터가 인수한 트윗덱, 미국 유명 벤처캐피털 세콰이어가 투자한 송킥, 야후가 인수한 섬리 등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주요 기업이다. 중요한 것은 구글이 지원하는 `캠퍼스런던`이라는 공동 작업 공간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캠퍼스런던에는 매일 저녁 다양한 모임과 워크숍이 열리고, 시드캠프라는 훌륭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에는 뛰어난 인재들, 훌륭한 투자자들,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들, 인큐베이터와 전문가 네트워크가 있고, 매일 미트업과 워크숍, 세미나가 열린다. 많은 나라에서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자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하고, 지원 센터 등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실리콘 밸리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간 세계 IT 산업의 성지다.

필자가 이번에 얻은 학습은 첫째,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정부보다는 민간의 역할, 특히 선도 기업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은 민간 역량이 활성화 됐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처럼 민간의 지원 역량과 대기업 참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나타내기 어렵다. 네이버나 삼성전자 같은 선도 기업이 우리나라 스타트업 활성화에 의미 있는 참여와 환경 제공을 할 필요가 여기 있다.

두번째는 시장이 함께 제공돼야한다는 점이다. 런던은 테크시티에 있는 많은 스타트업 곁에 금융이나 유통, 미디어 대기업이 있어 스타트업들에 기업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공공 시장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세번째, 스타트업도 이미 글로벌 경쟁에 돌입했다. 해외 투자자도 좋은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테크허브에 해당하는 도시에 속속 지사를 만들고, 액셀러레이터들도 글로벌 체계를 만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 중 핵심이 피칭(pitching) 능력이다. 30초, 5분 안에 자신의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슬라이드 없이 말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현하고, 좋은 인재를 찾는 데 매우 중요한 경쟁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인재 활용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창업자와 한국 엔지니어로만 구성된 팀이 아닌, 세계 각국 인재를 끌어들여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는 K팝이 보여주고 있는 다국적 인력 구성, 해외 작곡·작사가, 프로듀서의 참여를 통한 글로벌화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울이 어떻게 아시아의 테크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가 노력함에 따라 아직 비어 있는 이 위치를 선점할 기회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