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등이와 삼엽충의 심리적 기원

‘앱등이’와 ‘삼엽충’이 벌이는 설전은 IT 업계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앱등이’라 함은 일부 소비자들이 애플과 아이폰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을 비하하며 부르는 말입니다. 반대로 ‘앱등이’들은 이에 못지 않은 삼성빠와 갤럭시빠를 ‘삼엽충’이라고 비꼬며 응수합니다.

다른 IT 제품에 대해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지만, 앱등이-삼엽충 전쟁처럼 적극적이고 과격한 설전으로 번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휴대폰 담당 기자들은 종종 다른 기자들에게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린다며 부러움의 대상의 되기도 하는데요, 그 중에 많은 경우는 앱등이와 삼엽충의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4와 갤럭시S가 한참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던 당시 앱등이와 삼엽충의 과도한 논쟁을 비판하는 글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과열된 앱등이와 삼엽충의 싸움이 제품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사라지게 하고 무조건적인 깎아내리기로 다른 소비자들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앱등이-삽엽충 이분법이 밴드웨건 효과를 창출해 애플과 삼성이 아닌 다른 회사가 경쟁에서 더욱 뒤쳐지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이들 기업이 알바를 고용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적해봐야 앱등이와 삼엽충의 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앱등이나 삼엽충도 출발은 한 명의 소비자일 것입니다. 앱등이•삼엽충 전쟁에서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입을 닫도록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과연 어떻게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한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이 정도로 애착과 열의를 가지게 되느냐 하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제품 사랑이 왜 유독 휴대폰 산업에서 도드라지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누구나 조금씩 자신이 선택한 제품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과연 앱등이•삼엽충과 우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저와 같은 모바일 담당 기자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돌려 쓰며 갤럭시 기사를 쓴 날은 댓글을 통해 삼엽충으로 변신하고 아이폰 기사를 쓴 날은 앱등이가 되니, 앱등이와 삼엽충을 넘나드는 박쥐의 운명을 타고 난 셈입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쓴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다니엘 길버트는 2004년 TED 강의에서 행복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요약해서 전해줍니다. 강의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모네의 그림 6점을 놓고 선호도를 매기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1번부터 6번까지 번호를 매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3번과 4번 그림이 남아있는데 실험에 참여했으니 한 점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그림을 가지실래요?” 다수의 사람들이 선호도가 높은 3번을 골랐습니다.

그로부터 15분 후, 같은 참가자들에게 다시 그림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갖기로 선택한 3번 그림이 선호도 2번으로 올라갔고, 포기한 4번 그림은 선호도 5번으로 내려갔습니다. ‘내 것’으로 삼기로 결정을 하자 불과 15분 만에 그림에 대한 취향이 변한 것입니다. “내 것은 생각보다 좋아, 나머지는 형편없어”의 마법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앱등이와 삼엽충의 심리적인 기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특성 말입니다. 길버트 교수는 이를 ‘심리적인 면역 시스템’이자 ‘만들어진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은 자기합리화의 과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더욱 강하게 발휘됩니다. 길버트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또 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사진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게 한 후 그 중에 가장 선호하는 2장의 사진을 고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장 중에 한 장은 본인이 갖고 한 장은 과제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의 순간입니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뉘어졌습니다. 한 그룹에는 과제로 제출할 사진이 발송될 때까지 4일의 여유가 있으니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사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정을 번복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다른 그룹에게는 과제로 제출된 사진을 곧바로 영국으로 발송해야 한다며 교환의 기회를 원천 봉쇄했습니다.

그러자 흥미로운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선택한 직후에는 두 그룹이 사진에 대한 만족도에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환할 선택권이 없는 그룹은 만족도가 점점 올라간 반면, 사진을 바꿀까를 고민할 수 있었던 그룹은 점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교환권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인 면역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나은 것입니다.

길버트 교수는 이러한 우리의 심리적인 특성을 연애와 결혼에 빗대 설명합니다. 연애할 때 애인이 수시로 손가락으로 코를 후빈다면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결혼한 다음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래도 마음씨는 고운 사람이니까…”라며 심리적인 면역 시스템을 가동시키게 될 것입니다.

휴대폰을 구입하는 것도 결혼과 비슷합니다. 휴대폰은 어떤 IT 기기보다도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제품입니다. 게다가 2년 약정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늘 산 이 스마트폰은 좋던 싫던 나와 함께 2년을 함께 할 것입니다. 아이폰이던 갤럭시던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내 것은 생각보다 좋아. 나머지는 형편없어.”의 마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할부금과 위약금(어쩌면 위자료?)을 안내받는 순간 우리는 2년 동안 열심히 심리적인 면역 시스템을 가동시키게 됩니다.

물론 항상 자신이 구입한 기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제품, 이전에 사용하던 제품보다 형편없는 제품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옴니아 시리즈를 꼽을 수 있겠군요. 옴니아는 많은 분들에게 그 전에 쓰던 폴더폰보다도 사랑에 빠지기 힘든 제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그 전에 쓰던 피처폰에 비해 사랑에 빠질 만한 구석이 많아졌습니다. 그 전에는 휴대폰으로 엄두도 못냈던 일을 척척 해내니까요. 내 선택이고 예전 제품보다 좋으니 사랑에 빠지기 충분합니다. 아이폰과 갤럭시에 대한 앱등이와 삼엽충의 사랑도 그렇게 시작할 것입니다.

휴대폰에 대한 사랑이 배우자에 대한 합리화보다 위험한 이유는 우리가 휴대폰에 대해서는 결혼 전에 충분히 연애를 해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 기사나 대리점 직원의 설명에만 의존해, 맞선 보고 곧바로 결혼식 날짜를 잡듯 휴대폰을 구입하게 됩니다. 남은 것은 오늘 처음 만난 휴대폰과 결혼해 2년 동안 열심히 합리화를 하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모두 소비자의 탓은 아니겠죠. 우리나라의 수박 겉핥기식 IT 리뷰 기사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애플이 애플 스토어를 결혼식장(구매 장소)가 아닌 연애 장소(체험 및 교육 공간)로 디자인한 이후 많은 IT 매장이 체험형 공간으로 변화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인간 심리의 면역 시스템은 우리가 인생에서 위기와 실패에 봉착했을 때 행복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기작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과 현실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과해졌을 때 나의 삶은 내 것이 아닌 것이 되기 십상입니다. 적어도 돈 한푼 받지 않고(심지어 내 돈을 내고) 귀중한 나의 시간을 낭비하며 애플이나 삼성 마케터로 일해줄 필요는 없겠죠.

길버트 교수는 다음과 같은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무리합니다.

The great sourse of both the misery and disorders of human life, seems to arise from over-rating the difference between one permanent situation and another… Some of those situations may, no doubt, deserve to be preferred to others; but none of them can deserve to be pursued with that passionate ardour which drives us to violate thr rules either of prudence or of justice; or to corrupt the future tranquility of our minds, either by shame from the remembrance of our own folly, or by remorse from the horror of our own injustice.

이 말을 우리의 현실에 비춰 아래와 같이 의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비참하고 무질서해지는 것은 선택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제품은 다른 것보다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제품도 우리가 지나친 열정으로 신중함을 잃거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자신을 뉘우치면서 얻을 수 있는 내면의 평안함을 방해하는 것을 감내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미국인 모리스 빅햄(Moreese Bickham)은 저지르지 않은 범죄 혐의로 루지애나 주 교도소에 37년간 복역해야 했습니다. DNA 검사를 통해 무죄로 밝혀진 것이 78세 때였습니다. 그는 출소 후 “나는 한순간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영광스러운(glorious)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경이적인 합리화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 그는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처럼 살고 싶지 않군요.

제품을 제품으로 바라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과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 합리화의 기작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은 사실 같은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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