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자들을 위한 기업, 애플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밝힐게 있다. 일단, 나는 애플을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애플빠이거나 스티브 잡스를 숭배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애플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다. 대학원 시절 애플II는 우리 랩의 게임기계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렇고 이 후에도 그렇다고 들었지만, 우리나라에 단 두 대만 들어온 ‘리사’라는 컴퓨터를 본 순간 난 커다란 충격을 받았었다. 이게 컴퓨터구나 하고. 리사는 알다시피 스티브 잡스의 딸 이름이다.

메인프레임, 미니컴퓨터, 마이크로 컴퓨터를 모두 거쳤지만, 콘솔을 통해 프로그램 한다는 것을 석사때 처음 접했으나, ‘리사(Lisa)’ 화면에서 움직이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 마우스를 통한 제어를 본 순간 받은 충격은 내 기억에 깊이 새겨졌다. 팔로 알토의 제록스 연구소에서 스타 워크스테이션을 보고 달려와 엔지니어를 모아놓고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얘기를 그래서 난 충분히 이해한다.

애플 리사 (출처: mac-history.net)

애플 리사 (출처: mac-history.net)

이후 기업 연구소에서 선 워크스테이션, PC와 함께 맥을 사용했다. 맥으로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당시 회사에서는 나 같이 발표자료를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90년 대 초에 쿠퍼티노를 방문해 애플 디자인 그룹이 사용하는 공간을 가봤는데 그 이름은 네버랜드였다. 피터팬의 네버랜드에 나오는 이름이 각 구역마다 붙어있는 그 장소는 내게는 하나의 판타지였다. 그 때는 애플의 첫 PDA인 뉴튼(Newton)을 사왔고, 그 기기는 아직도 내가 간직하고 있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그 기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그가 애플로 복귀하기 전에 봤다. 넥스트(NeXT)의 신제품 발표 장에서 본 그의 발표는 그야 말로 열광적인 지지자들의 반응을 끌어냈고, 나도 모르게 박수와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이 연설은 신도들의 종교행사와 다를 바 없었다.

애플은 나에게 준 또 하나의 충격은 아이팟이다. 삼성전자를 나오기 전에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는 MP3 플레이어인 ‘옙(YEPP)’이었다. 인터넷 시대가 오면 삼성전자의 모든 기기는 인터넷과 연결되어야 하고, 이제 콘텐트는 디지털화되어 담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로 MP3 플레이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애플의 토니 파델(Tony Fadell)과 ‘위대한’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만든 아이팟의 클릭 휠을 봤을 때 난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그 때는 이미 삼성을 떠난 뒤였고, 남아 있는 옙 사업팀에 위로를 보내고 싶었다. 토니 파델은 올해 구글이 32억불에 인수한 네스트(Nest)라는 회사의 창업자이다.

애플은 어떤 회사인가? 1997년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애플은 어떤 회사가 되어야 하는 가’를 발표한다. 그는 애플은 더 이상 제품을 얘기하는, 단지 윈도우 보다 뭐가 나은지, 남들과 다른 기술이 어떤지를 얘기하는 회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잡스 스피치

애플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 다르며,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나이키가 위대한 운동선수들에게 존경을 보내는 것과 같이 애플은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선언한다. 그게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캠페인’의 시작이고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애플의 핵심 역량이라고 정의했다.

애플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 정신에 있다. 미친 사람,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정해진 규칙을 좋아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며, 인류를 진보시킨다는 것이다. 애플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작품을 만들고, 결과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앱스토어나 아이튠스, 아이북스를 통해, 매킨토시와 아이패드, 아이폰은 바로 그 들을 위한 서비스와 기기라는 것이다.

애플의 광고를 보면 제품 얘기가 아니라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창의적이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시각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며, 우리의 숨겨져 있는 재능을 발휘하고, 새로운 세대의 희망을 얘기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 것이 잡스의 유산이며 애플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다. 애플 사용자가 자긍심을 갖고, 제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에서 나온다.

나는 애플을 존경한다. 사람들이 애플을 얘기할 때 대부분 스티브 잡스 만를 거론한다. 물론 그는 애플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애플에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다. 디자인의 신화인 조니 아이브(Jony Ive), 소프트웨어의 수퍼맨인 크레이그 페더레기(Craig Federighi), 마케팅 담당 필 쉴러(Phil Schiller), 아이튠스와 앱스토어, 애플 페이를 총괄하는 에디 큐(Eddy Cue), 애플 와치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한 케빈 린치(Kevin Lynch), 팀쿡의 오른팔이라고 부르는 제프 윌리암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9월 스페셜 이벤트에서 팀 쿡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동시에 모든 직원들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내 기억으로는 국내 어느 기업도 신제품 발표에 공헌한 임직원을 호명하고 존경을 보낸 적이 없다. 이런 모습이 애플의 문화이며 강력한 힘이다. 왜 우리나라 회사들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제품을 만드는데 참여한 리더와 엔지니어, 디자이너를 우리의 영웅으로 만드는데 그렇게 인색한지 답답하다.

애플 와치 발표 후 조니 아이브의 모습 (중계를 보면서 필자가 찍은 사진)

애플 와치 발표 후 조니 아이브의 모습 (중계를 보면서 필자가 찍은 사진)

이 글을 쓰기 위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애플이 우리의 생활이나 사고 방식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를 크라우드소싱 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했는데, 한 시인은 ‘기업의 창조력을 믿게 했다고 했다’고 했고, 미술 애호가는 하나의 문화 혁명이었음을 지적했다. 콘텐트를 소유의 개념에서 소비의 개념으로 변화시켰음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의견도 많았다. 대기업에 구속되었던 국내 시장에 기술 중심의 시장 판도를 만들거나 콘텐트의 유료화가 가능함을 보여줬다는 의견도 있고, IT 전문가 중 한 명은 많은 회사들이 디지털 시대에 애플의 사고와 문화체계를 따라가게 만들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많은 개인이 창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만든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함, 인문적 관점, 뛰어난 사용자 경험을 얘기했으며, 와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후배는 ‘직관적인 사용법을 보편화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통해 모바일이 생활 속에 결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의견도 여럿 보였는데 이는 스티브 잡스가 리버럴 아츠의 중요성, 미학적 시각의 의미, 디자인 철학 등에 대해 강조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이상으로 ‘가치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줬다는 댓글도 있었다.

흥미로운 시각 중 하나는 대기업 임원으로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심화된 경쟁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단절된 휴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다. 이는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이 주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한 의견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단순함과 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것, 인문학과 인간의 창의성 그리고 본성을 들여다 보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하나의 제품이 산업을 혁신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한 기업이 세상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게 애플의 힘이고 애플이 꿈꾸는, 현실에 안주 안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를 알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이폰이나 맥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반항아이지만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상징이 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들고나오는 컴퓨터가 맥북이라는 사실을 보면 애플이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가를 잘 알 수 있다.

이제 잡스의 시대에서 팀 쿡의 시대로 넘어갔다. 지난 9월, 팀 쿡은 애플 와치를 소개하면서, 스티브 잡스 사후 처음으로 ‘하나 더(One more thing)’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잡스가 세상을 바꿀 기기를 소개할 때 했던 말이다. 그가 이제 자신의 입으로 그 표현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내가 아는 삼성전자의 임원은 몇 년 전에 나에게 ‘스티브 잡스보다 팀 쿡이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유는 그는 매우 계산적이고 제조업을 잘 알고, 잡스의 지지를 받는 후계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1년 8월 그가 CEO가 되었을 때 애플의 주가는 50불 대였으나 이제 주가는 100불을 넘어섰다.

위대한 IT 회사에서 세상의 모든 산업을 바꾸고 새로운 혁신을 얘기하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철저하게 효율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애플의 CEO로 그의 행보는 앞으로 더욱 빛을 발휘할 듯 하다. 잡스의 열정으로 성장했지만, 이제 글로벌 기업,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며 전략을 짜야 하는 기업의 수장으로 팀 쿡의 리더십은 그래서 잡스와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며, 지난 9월 행사에서 많은 임직원들이 그에 대한 존경을 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국내 언론은 그가 잡스의 유산을 버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잡스의 유산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자들을 위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 (<아레나 옴므 플러스> 2014년 11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