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드코어 스마트폰의 현재와 미래

이 글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모바일 트렌드 매거진에 기고하기 위해 6월 초에 작성한 글 원문입니다. NIPA 모바일 트렌드 매거진 이번 호는 다음주 쯤 발간될 예정입니다.

여름 스마트폰 시장은 쿼드코어로 후끈

듀얼코어를 살까, 최신 쿼드코어를 사야 할까? 컴퓨터 얘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에도 쿼드코어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해외 시장에는 이미 상반기부터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하나 둘 선보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6월부터 삼성전자 갤럭시S3를 시작으로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속속 출시될 예정이다.

1GHz대 싱글코어 스마트폰이 높은 사양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이 불과 2년 전인 것을 생각해보면 모바일 프로세서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 지를 실감할 수 있다. 듀얼코어 프로세서가 보편화된 이후 한동안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요소가 화면 크기와 해상도 등으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출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프로세서 경쟁이 불붙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samsung-galaxy-s3-usa-release

국내 첫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될 삼성전자 갤럭시S3

언제부터 휴대폰에서 프로세서가 중요해졌을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일반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아무도 휴대전화에 탑재되는 프로세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해진 사양에서 제조사가 내장한 제한된 기능만 이용했기 때문에 굳이 소비자가 더 빠른 하드웨어 성능을 필요로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일반 소비자들이 프로세서 성능을 따지는 것은 몇 년을 주기로 새로운 운영체제와 고사양의 게임이 출시되는 PC 시장에 국한된 얘기였다.

그러나 소비자가 직접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조금씩 프로세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1년에 한 모델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해 제공하는 애플 아이폰과 달리, 빠른 속도로 아이폰을 추격해야 했던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프로세서의 컴퓨팅 파워가 더욱 중요했다. 빠른 속도로 다양한 단말기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운영체제를 하드웨어에 최적화해서 담아내기가 어려웠고, 성능 면에서나 마케팅 측면에서나 빠른 프로세서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그 틈새를 빠르게 공략한 회사가 퀄컴이었다. 퀄컴은 1GHz라는 상징적인 클럭 속도를 선점하는 동시에 ‘스냅드래곤(snapdragon)’이라는 브랜드를 히트시키며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1GHz급 스냅드래곤은 구글 넥서스원을 비롯해 HTC 디자이어와 HD2,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 X10 등 2010년에 인기를 끌었던 주요 스마트폰에 잇달아 탑재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고, 통신칩과 프로세서를 통합한 ‘윈칩’ 설계로 모바일 시장에서 비교 우위를 가져갔다.

퀄컴이 통신 원천기술을 가지고 통신 모뎀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하나로 통합한 원칩 설계에 주력했다면,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텍사스 인스투르먼츠(TI) 등은 프로세서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추며 퀄컴을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엔비디아와 TI는 퀄컴에 한 발 앞서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상용화하며 역공에 나섰고, 삼성전자도 엑시노스(Exynos)라는 모바일 프로세서 브랜드를 런칭하고 갤럭시S2 등 자사 제품을 중심으로 탑재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넓혀 나갔다.

exynos4 and tegra3

삼성전자 엑시노스4 프로세서(왼쪽)와 엔비디아 테그라3

올 초에 열린 CES 2012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에서는 쿼드코어 프로세서와 이를 탑재한 신제품이 대거 공개되며 올 여름 쿼드코어 스마트폰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모바일 쿼드코어 프로세서는 엔비디아의 테그라3(Tegra 3), 삼성전자의 엑시노스4 쿼드 시리즈, TI의 OMAP5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중국 화웨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쿼드코어 프로세서 K3V2를 공개하며 고사양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출사표를 내밀었다.

이와 달리 스냅드래곤으로 초기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했던 퀄컴은 쿼드코어 프로세서의 상용화가 다소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신 듀얼코어 프로세서와 LTE 통신칩을 하나로 통합한 스냅드래곤 S4 시리즈로 LTE 듀얼코어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은 싱글코어 시절의 클럭 속도 경쟁에서 최근에는 듀얼코어에 이어 쿼드코어에 이르기까지 코어수를 늘리는 쪽으로 경쟁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 가운데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는 주요 제품은 아래 표와 같다.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장단점은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속도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하드웨어 사양이 제한적이었던 탓에 같은 하드웨어 사양을 갖춰도 제조사의 운영체제 최적화 능력에 따라 성능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쿼드코어 스마트폰은 하드웨어 성능으로 이러한 문제를 대부분 커버해줄 것이다. 스마트폰과 PC의 성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제품은 RAM도 2GB까지 늘린다고 하니 웬만한 구형 노트북 부럽지 않은 사양이다.

스마트폰에서는 단순히 성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전력 소비를 낮춰서 배터리 지속시간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실제로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모바일 칩셋 업체들의 발표를 보면 쿼드코어 프로세서에서 전력 소비 문제는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반도체 공정이 40nm에서 최대 28nm 수준으로 정밀해지면서 코어당 전력 소비가 다소 줄어들었고, 상황에 따라 4개의 코어를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도입해 전력 소비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엔비디아 테그라3의 경우에는 4개의 코어 외에 배터리 절약용 저전력 코어를 하나 더 추가해 음악 재생 등 간단한 작업에서는 저전력 코어만 가동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전력을 더욱 낮추는 설계를 적용하기도 했다. 퀄컴은 쿼드코어 경쟁에서 한발 뒤졌지만 향후 출시할 제품에서 4개의 코어를 각기 다른 클럭 속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도입해 소비 전력을 더욱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nvidia tegra 3 architecture

엔비디아 테그라3 프로세서는 1개의 저전력 코어를 추가하고 총 5개의 코어를 유동적으로 사용해
전력 소비를 낮추는 설계가 적용됐다

반대로 LTE 지원 여부는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LTE를 상용화한 선진 시장에서는 통신사들이 3G 스마트폰보다 LTE폰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과는 달리 지금까지 출시된 쿼드코어 스마트폰은 대부분 LTE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LG-Optimus-4X-HD-P880-2LTE 스마트폰은 데이터 통신은 LTE로, 음성통화는 3G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두 개의 채널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기술적인 과제를 앉고 있다. 초기 LTE 스마트폰에서는 3G 모뎀과 LTE 모뎀, AP를 각각 별도로 탑재했기 때문에 배터리 지속시간이 충분치 못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배터리 관리 기술이 발전하고 퀄컴이 LTE와 3G 모뎀,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하나로 통합한 스냅드래곤 S4를 출시하는 등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쿼드코어에서는 LTE를 지원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LTE와 쿼드코어를 통합한 퀄컴의 원칩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은 이르면 올 연말부터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도 2013년 출시를 목표로 AP와 통신칩을 통합한 프로세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가 갤럭시S3 제품 중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 시장에 쿼드코어 프로세서에 LTE 모뎀을 별도로 탑재한 모델을 선보인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쿼드코어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모바일 환경에서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활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 즉 쿼드코어의 킬러 서비스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웹 서핑이나 메일 확인, SNS와 모바일 메신저 등 스마트폰에서 많이 활용하는 기능을 쓰기에는 듀얼코어 프로세서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 해도 3D 게임 등 고사양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제외하면 4개의 코어를 모두 활용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을 할 때에는 쿼드코어의 성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향후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다양한 활용법을 찾아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쿼드코어 킬러 서비스로 무엇을 꼽아야 할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동안 쿼드코어의 킬러 앱은 향후 출시될 고사양 3D 게임 정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실 고사양의 게임을 즐기지 않는 다수의 소비자들은 당분간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HTC-One-X

HTC가 해외 시장에 먼저 선보인 쿼드코어폰 One X, 국내에도 올 여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하반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쿼드코어 제품이 각광을 받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 소비자들은 저가폰보다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제조사와 통신사도 갤럭시S3를 필두로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내세울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쿼드코어’라는 이름이 가지는 마케팅 파워가 십분 발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로는 쿼드코어 2GHz 급 프로세서가 출시되는 등 프로세서 성능이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스마트폰 시장도 PC 시장처럼 단순한 클럭 속도나 코어수 경쟁이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단말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일반적인 기능만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는 듀얼코어 이하의 제품을 선택하고, 고사양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만 쿼드코어 이상의 제품을 구입하는 등 PC 시장처럼 가격과 이용 목적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스마트폰 시장도 쿼드코어를 앞세운 하이엔드 시장과 듀얼코어 이하의 보급형 시장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을 웃돌고 있고 많은 않은 소비자들이 단말기 할부금과 통신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듀얼코어 수준의 충분한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저렴한 가격으로 떨어진다면 보급형 시장이 예전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쿼드코어 프로세서는 스마트폰을 넘어 안드로이드 태블릿PC와 윈도우8 태블릿PC 등 더 강력한 성능을 필요로 하는 모바일 기기에서 널리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motorola-atrix-lapdock

스마트폰을 노트북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모토로라 랩독

또한 쿼드코어의 컴퓨팅 파워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 액세서리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모토로라가 아트릭스와 함께 선보였던 랩독과 멀티미디어독이나, 최근 아수스가 공개한 패드폰 같은 제품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에 큰 스크린을 끼워 태블릿PC나 노트북처럼 활용하거나, TV에 연결해 셋톱박스나 스마트TV처럼 활용하는 등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단순한 휴대폰을 넘어 모바일 컴퓨팅의 허브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쿼드코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멀티 로그인이나 운영체제 가상화도 보편화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스마트폰으로 집에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다가 출근해서는 윈도우폰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은 제조사들이 하나의 운영체제를 최적화해서 탑재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제공하기에도 버거워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Asus-Padfone-022

아수스에서 공개한 패드폰. 스마트폰에 스크린을 끼워 태블릿처럼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