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신의 부재와 애플교의 미래

- 임정욱 대표 강연과 ‘인사이드 애플’을 보고(이 글 내용의 상당수는 강연 내용과 ‘인사이드 애플’ 책에서 따온 것이지만 주장의 내용은 저자나 역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5월16일 저녁, 강남역 근처의 한 강연장에서 ‘인사이드 애플’의 역자인 임정욱 전 라이코스 대표의 강연이 열렸다.

‘인사이드 애플’은 포춘 선임기자인 애덤 라신스키가 애플 전•현직 임원과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를 바탕으로, 애플의 내부 시스템과 조직 문화를 파해치고 어떻게 애플이 위대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조망해보는 책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공식 전기가 스티브 잡스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잡스 뿐만 아니라 애플이라는 조직과 그 문화를 집중 조명했기 때문에 또 다른 관점에서 애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임정욱 대표는 질의 응답을 포함해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진 이날 강연에서 300쪽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해 전달했다.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청중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이 자리를 메운 사람들의 관심사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 다수의 청중들은 사로잡고 있던 고민은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애플에서 일군 독특한 기업 문화를 어떻게 하면 내가 있는 회사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들 중에 몇 명은 벤처기업을 이끄는 사장님이었고, 다른 분들은 애플의 경쟁자로 꼽히는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분들인 듯 했다.(이날 강연은 삼성전자 사옥 바로 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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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방식은 모방 가능한가?

이 질문은 저자인 애덤 라신스키가 ‘인사이드 애플’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책 1장에서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애플이 이룬 성공은 정말 애플에게만 가능한 특별한 일일까? 아니면 애플은 전 세계 기업가들이 배워야 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p.25)”

임정욱 대표는 청중들의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애플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친절히 답변했다. 예를 들어 제품 우선, 집중, 단순화, 전문화, 통합, 창의적 인재 우대, 타협하지 않는 정신 등이다.

저자인 라신스키도 9장 ‘애플 방식은 모방 가능한가’를 통해 애플의 장점을 받아들이려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그 장단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소개된 사례를 살펴보면 이들이 애플 문화의 일부를 차용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지언정 애플의 문화 대부분을 흡수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는 9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스로 던진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새로 태어난 애플의 경영과 운영상의 특징은 모든 비즈니스에 귀감이 된다. 그것은 또한 벤처기업가들을 위한 소중한 핸드북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플처럼 되고자 할 때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은 애플의 문화는 6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현명한 CEO이자 단 한 명의 천재 기업가가 35년간 쌓아올린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회사도 손쉽게 애플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p.270)

나는 임정욱 대표나 라신스키 기자가 너무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부상한 애플에게서 무언가를 배워보려는 분들의 열정 어린 질문을 단칼에 베어버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애플의 한 두 가지 장점을 취해 자신의 회사에 접목해보려는 모든 시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애플의 문화는 스티브 잡스 개인의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서로 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방식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기업 문화를 모두 뒤엎으려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애플은 대부분의 경영 이론에 전면으로 배치되는 유일무이한 사례다. 결정적으로 우리 혹은 우리의 보스는 절대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그가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은 아니다. 너무도 복잡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이며, 누구보다 독특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까다롭게 굴고 성질만 부린다고 애플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 사후에 추모 열기가 일면서 많은 사장님이나 부장님들이 잡스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재빨리 그의 서재에서 스티브 잡스 전기나 애플 관련 책을 찾아내 몰래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고 싶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애플조차도 제2의 스티브 잡스를 찾는 일을 포기했다)

그런데 누구도 다시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없다면, 흔히 ‘잡스에 의한, 잡스를 위한, 잡스의 회사’처럼 비취지는 애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애플은 과연 5년 후에도 지난 15년 동안 보여줬던 놀라운 혁신과 성장을 이어나가며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날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의 두 번째 관심사이자, 내가 임정욱 대표의 강연과 ‘인사이드 애플’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답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저자 라신스키가 했던 것처럼 애플의 조직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최선이다.

애플은 앞으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인사이드 애플’을 읽다 보면 애플 조직 문화의 모순된 면이 드러난다. 흔히 경영학 이론에서는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자신이 전체 조직과 프로세스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 투명성을 유지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플은 철저히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으며, 애플 직원들은 매우 한정된 책임과 권한만을 갖는다. 이러한 비밀주의는 자신이 맡은 일이 회사 전체의 전략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지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어떤 직원은 잡스가 “이 회의에서 뭔가 유출된다면 당사자를 해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회사 고문 변호사들을 동원해 최대한 응징할 것”이라고 말하자 악몽을 꿀 정도 였다고 술회한다.

그 결과 애플 직원들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하나하나가 퍼즐 조각처럼 분리된다. 완성된 퍼즐의 모습은 조직의 최상위층만이 알 수 있다. 직원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대신 잡스 본인이 세세한 것 하나까지 직접 챙긴다. 애플 직원 대부분은 제품발표회에서 임원들이 선보이는 데모 제품을 보지 않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경영 이론에서 가르치는 방법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모습이다. 특히 나를 포함해 전체 프로세스와 내가 맡은 일 사이의 상관 관계와 나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고민하는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애플의 조직 문화가 무척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애플에 있는 모든 이들은 밖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밖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애플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애플이 동종 업계의 회사와 비해 큰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스톡옵션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직원들도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애플은 동종 업계의 회사들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직원들은 왜 때로는 휴일을 반납해가면서까지 애플에 충성을 다하는 것일까? (열심히 일하는 애플 내부의 문화는 최근 공개된 애플의 신입사원 환영 메시지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대답의 일부분은 애플 문화의 긍정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애플 특유의 디자인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엔드-투-엔드 통합, 전략적으로 제한된 과제에 집중하고 나머지 아이디어에 No를 외칠 수 있는 문화, 스타트업과 같은 유연한 조직과 뛰어난 인재들과 같은 애플의 장점은 또 다른 뛰어난 인재를 불러모으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점이 애플 직원들에게 다른 어떤 보상보다도 더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애플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프레데릭 밴 존슨은 “애플 직원들에게는 그런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그런 훌륭한 제품에 열정을 받친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에 앉아 있으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90%가 당신 회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진 경험이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최근에 기사 작위를 받은 조나단 아이브도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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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표지 2010년 1월

잡스신의 부재와 애플교의 미래

그러나 이것만으로 애플의 마법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애플 직원들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던 동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스티브 잡스 본인이다.

책에서 한 전직 애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애플에는 잡스를 숭상하는 강력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있잖아, 스티브가 이것을 원해. 스티브가 저것을 원해.’ 일상적인 대화에서 ‘스티브’가 매우 자주 튀어나오고 그는 어떤 사람보다 큰 힘을 갖습니다.” 어떤 임원은 “일을 실천에 옮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메일 제목에 ‘Steve request’라고 쓰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임정욱 대표는 강연에서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정점으로 한 종교 집단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저자 라신스키도 애플의 종교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빙고. 종교성이야 말로 애플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인사이드 애플’ 이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종교성을 지적한 바 있다. 1986년 초 남성잡지 ‘에스콰이어’는 ‘넥스트’를 설립한 잡스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스티브 잡스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Steve Jobs)’라는 제목을 달았다. 저널리스트 앨런 도이치먼도 2000년에 출간한 애플의 재탄생 과정을 다룬 책에 똑같은 제목을 붙였다. 2010년 아이패드가 발표된 뒤 ‘이코노미스트’는 머리 뒤에 금빛 후광이 비치는 예수의 모습을 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표지에 실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도 왕이나 신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열리는 회의를 통해 애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를 파악하고 있었고, 모든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그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의 칭찬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모든 독설을 감내하는 직원들도 많았고, 어떤 직원들을 그와 마주치기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잡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아마 그 어떤 기업보다 애플 자신이 가장 먼저 ‘어떻게 하면 제 2의 스티브 잡스를 발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을 것이다. 저자도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누가 다음 CEO가 돼야 하는가를 두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이 고민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사회가 차기 ‘교주’로 티모시 도널드 쿡을 선택한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또 다른 잡스를 발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가치를 그의 사후에도 애플 내부에 충실히 이식할 수 있는 관리자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잡스가 싫어할 만한 비유지만, 팀 쿡에게 남은 숙제들은 보면 마치 초기 기독교에서 베드로나 바오로가 했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팀 쿡이 2009년 1월 스티브 잡스가 병가를 떠난 뒤 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컨퍼런스 콜에서 한 발언 – 흔히 팀 쿡 독트린 으로 알려진 – 은 마치 애플교의 교리를 암송하는 듯 했다(인사이드 애플 p134 참조). 그는 자신이 애플교의 가장 훌륭한 신자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잡스가 떠나기 전에 만든 애플유니버시티도 애플교의 교리를 정리하고 설파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팀 쿡을 선택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둔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팀 쿡이 CEO가 된 이후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애플 주가는 최대 1400억 달러나 늘어났다. 아이폰4S와 새 아이패드는 공개 당시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시장에서는 또 다시 사상 최대 판매량을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모두 당초 월가의 예측치를 뛰어넘는 결과다.

만약 팀 쿡이 아닌 스티브 잡스와 유사한 성향의 인물(예를 들어 스콧 포스톨?)을 CEO에 앉혔다면 어땠을까? 혹은 외부에서 제 2의 존 스컬리 같은 인물이 영입됐다면 어땠을까? 결과론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팀 쿡 만큼 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부터 차기 CEO를 염두에 두고 영입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스티브 잡스가 14년 전에 팀 쿡을 데려온 것은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 아무리 팀 쿡이라도 외부에서 갓 영입됐다면 애플교의 차기 수장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잡스는 아마 존 스컬리를 영입했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건강이 악화되고 팀 쿡에게 조금씩 권한을 넘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다만, 팀 쿡호가 지금 순항하고 있다고 할 지라도 이와 같은 좋은 시절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상상하기는 싫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이 빌 게이츠가 떠난 이후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발머 치하의 MS가 망가진 원인 중 하나로 엔지니어보다 MBA 출신을 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스티브 잡스가 중용한 MBA 출신은 팀 쿡과 CFO인 피터 오펜하이머 정도였다. 잡스 시절 애플에서는 언제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진리였다.

그러나 팀 쿡 시대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라신스키가 5월24일 포춘에서 보도한 기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2011년까지 14년간 애플에서 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일했던 맥스 페일리의 발언이 눈에 띈다.

“요즘은 모든 중요한 미팅에서 항상 프로젝트 매니저와 글로벌 공급망 관리자들이 북적거린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있었을 때에는 엔지니어링 쪽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결정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프로덕트 매니저와 공급망 관리자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죠.”

기사는 2년 전 애플 직원 가운데 링크드인 프로필에 MBA를 언급한 직원이 10%도 안됐던 반면, 지금은 절반이 넘는 직원이 MBA를 이수했거나 이수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했다. 이것은 둘 중에 하나를 뜻한다. 애플에서 MBA 출신이 우대를 받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이들이 애플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라신스키 기자는 기사 말미에서 “더 이상 신은 필요 없고 인간적인 CEO가 필요하다”라며 팀 쿡이 가져온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나는 좀 께름칙하다)

물론 팀 쿡은 이미 성공의 정점에 이른 조직을 물려받았다는 면에서 베드로나 바오로보다는 훨씬 덜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오로의 역할보다 팀 쿡에게 주어진 과제가 한결 험난해 보이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재림을 약속했지만 잡스의 재림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97년 한 차례 재림했으며 우리에게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안기고 떠났다. 우리는 모두 그가 또 다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플의 미래에 대해 저자 라신스키와 임정욱 대표는 “애플이 비상식일 정도로 훌륭한(insanely great) 회사로 남기는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문화를 통해 앞으로도 훌륭한 회사로 남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나는 애플의 미래에 큰 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많다고 본다. 신의 재림을 보장할 수 없는 종교는 큰 위기가 닥치는 순간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애플의 위기는 아마도 미래에 출시할 제품이 한 번 크게 실패하는 순간 닥쳐올 것이다. 애플의 단순한 제품 라인업은 훌륭한 제품이 끊임없이 나왔을 때 효율성의 극단을 자랑하지만, 한 번 실패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애플이 한 두 번 큰 실패를 맛본다해도 막대한 현금 자산이 회사 자체는 유지시켜 주겠지만, 주가와 인재, 그리고 팬보이는 썰물처럼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특히 애플팬들은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애플 제품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애플 제품이 업계 선두 수준의 품질로 출시된다고 할 지라도 센세이션한 충격을 주지 않는 한 실망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라신스키는 책에서 나머지 사람들의 기대도 항상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애플 마케팅에서 애플 추종자들이 하는 역할은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다.

잡스가 없어도 애플에서 누군가는 취향이나 소프트웨어 구조와 같은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마 팀 쿡은 아닐 것이다. 과연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여전히 애플에는 조나단 아이브나 스콧 포스톨과 같은 뛰어난 사람들이 있지만, 키노트와 넘버스가 보여주는 격차를 보면 잡스가 없는 애플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프리젠테이션 도구로 꼽는 ‘키노트’는 사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후 본인이 프리젠테이션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키노트의 형제뻘인 스프레드시트 ‘넘버스’는 키노트처럼 최고로 꼽히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잡스가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의 제품이 항상 넘버스 같은 수준으로 나온다면 나는 더 이상 애플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애플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내놓을 제품에 달려있다. 아이폰4S와 새 아이패드가 순항하고 있지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들 제품에서 혁신적인 새로운 면모는 없었다. 과거에 있었던 기술과 인수한 기술을 적용했을 뿐이다. 과연 잡스가 없는 애플에서 앞으로 선보일(지 모르는) iTV나 iCar와 같은 새로운 제품군이 과거 아이팟이나 아이폰, 아이패드가 그랬던 것처럼 혁신적일 수 있을까?

꼭 그러하기를 바란다.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애플교의 신자이고 싶지만 나이롱 신자라서 그런지, 신이 부재하는 상황에 새 교주가 주기적으로 기적이라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계속 신자이기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 일단은 경건한 마음으로 ‘인사이드 애플’을 다시 읽으며 6월에 열릴 신제품 예배에 기대를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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