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다녀온 NEXT 컨퍼런스 후기입니다.
NEXT 컨퍼런스는 스파크랩스(SparkLabs)에서 개최한 첫 컨퍼런스였는데요, 스파크랩스는 김호민 Innotive 공동창업자, 버나드 문 Vidquik사 CEO, 이한주 Hostway 공동창업자가 의기투합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입니다.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과 레이 오지 전 MS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SA) 등 수퍼스타와 한국과 미국에서 창업한 경험이 있는 다양한 인사들을 고문단으로 영입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미미박스(memebox)와 노리(KnowRe)도 스파크랩스의 포트폴리오에 속해 있더군요.
NEXT 컨퍼런스에 초대를 받고 나서 강연자들의 면면과 프로그램을 보고 구미가 확 당겼습니다. ▲레이오지와 함께하는 노변담화 ▲검색의 혁신 ▲교육의 미래 ▲헬스케어의 혁명 ▲레티일의 미래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도시들 ▲클라우드 컴퓨팅의 혁신 ▲모바일의 혁명으로 짜여진 주제들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화두를 빼놓지 않고 다룰 것으로 기대를 갖게 했고, 일방적인 연설이나 프리젠테이션이 아니라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직 기자들이 사회자 역할을 맡은 세션이 많아서, 와이어드와 테크크런치, 더넥스트웹의 기자들이 고수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토론을 이끌어갈 지 한 수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어머! 레이 오지가 온다니! 이건 가야 해!”를 외쳤죠.
세션 1. 레이오지와 함께 하는 노변담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레이 오지와 와이어드 스펜서 기자가 대화를 나눈 첫 번째 세션부터 기대감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션 제목이 ‘노변 담화’라고만 돼 있어서 어떤 주제를 다룰 지 궁금했는데, 레이 오지의 개인적인 창업 경험담으로 시작해서 클라우드 기술을 계기로 다시 중앙집중형 설계로 변화하고 있는 컴퓨팅 트렌드의 장단점, 이와 맞물린 프라이버시와 보안성 문제(NSA 스캔들 포함), IoT의 시대 전망, 스타트업 문화 등 폭넓은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지만 어느 하나 심도 있는 대담까지 발전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장에서는 “사실 나도 레이 오지 보러 왔잖아”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세션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정말 얼굴 본 걸로 만족해야겠다”는 볼멘 소리도 들었습니다. 특히 유독 현업 개발자들의 아쉬운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레이 오지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성 탓에 개발자들이 유독 기대감이 높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레이 오지는 로터스 노츠 등 뛰어난 협업 솔루션의 개발자로서 개발자 세계의 수퍼 스타입니다. 특히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로서 임명되면서 빌 게이츠가 떠난 뒤 MBA 출신들이 중용되던 MS에서 내부 개발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MS가 오픈 소스 진영에 대한 지원과 상호 운영성을 강조하도록 변화를 이끈 공로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컨퍼런스에 참석한 개발자들은 레이 오지가 개발자로서, 아키텍트로서, 후배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화두와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주기를 기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저도 개발자는 아니지만 다양한 주제에 대한 레이 오지의 의견보다는 MS를 떠난 이후 그의 행보와 최근 관심사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세션을 마치고 현장에서 그가 보이지 않길래 당연히 언론에서 인터뷰 일정을 잡아뒀겠구나, 기사를 통해 조금 더 심도있는 내용을 볼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는데 아직까지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혹시 기사가 올라오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세션 2. 검색의 혁신
이어진 세션에서도 폭넓은 주제로 다양한 인물들의 대담을 들을 수 있었지만, 몇몇 창업자의 경우 너무 본인 회사와 관련된 얘기만 한다던가, 패널 구성을 다양하게 잡다 보니 서로 전문 분야가 달라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기 보다는 진행자와 각각 일대일로 질의응답을 하게 된다던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전에 처음 컨퍼런스가 시작될 때에 비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뜨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이어지는 컨퍼런스가 보통 그러하기 마련이지만요. 오전 세션보다는 오후 세션이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오전만 듣고 자리를 뜬 분들이 꽤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삐딱하게 적었지만 아쉬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세션은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도시들’ 세션이었는데요, 도시라는 살아있는 생태계가 기술 및 경제의 발전과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뉴욕과 서울, 유럽 등 다양한 도시에서 실제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비교해볼 수 있었고 더욱 폭넓은 시각에서 서울이라는 생태계를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이에 대한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션 3. 헬스케어의 혁명
마지막 모바일의 혁명 세션에 연사로 참석한 빈 린(Bin Lin) 샤오미(XIAOMI) 공동설립자의 얘기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샤오미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자체 UI인 miui를 통해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핸드셋 제조사입니다. 세션의 핵심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고 이제는 조금 새삼스러운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의 발언 속에서 중국의 스케일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빈 린 : …(전략) 샤오미 박스라는 셋톱 박스도 출시했습니다.
사회자 : 셋톱박스도 하시나요?
빈 린 : 중국이 워낙 큰 시장이잖아요. 연간 TV 판매량이 4천만 대(정확한 수치인지는 가물가물) 정도 됩니다. 40달러 정도로 셋톱박스를 만들어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만약 20달러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으면 중국 TV의 절반 정도를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게 되면 샤오미 휴대폰을 와이파이로 셋톱박스에 연결해 더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궁금해서 중국 TV 시장에 대해 잠깐 검색해봤습니다. 연간 2억 대를 웃도는 전세계 TV 시장 가운데 중국 시장의 규모는 홀로 세계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규모더군요. 그런데 삼성, LG 등 세계 TV 시장을 호령하는 국내 업체들이 유독 중국에서는 아직 힘을 못쓰는 듯 합니다. 상위 점유율을 모두 중국 현지 제조사들이 나눠서 장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셋톱박스를 20달러 가격으로 만들어서 중국 시장 절반(대충 세계 시장의 1/8)을 먹겠다는 얘기를 지나가듯 툭 던지는 스케일이 참 부러웠습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이어진 칵테일 파티는 넥스트 컨퍼런스의 2차전이었습니다. 바쁘신 분들 중에는 컨퍼런스는 참석을 못했지만 뒤늦게 리셉션 시간에 맞춰서 오신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쐬다 보니 컨퍼런스 사이 사이와 칵테일 파티에서 오랜만에 인사 드리거나 처음 인사 드리게 된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현욱 비석세스 대표님과 미디어 운영의 고충에 대해 잠깐 수다를 떨었고, 인텔에 인수된 올라웍스의 류중희 전 대표님도 오랜만에 인사들 드렸습니다. 안드로이드펍 운영하시는 박성서 소셜앤모바일 대표님도 만나 오랜만에 이것저것 여쭤봤습니다. 국내 대기업에 계신 분들도 오랜만에 많이 뵙고 좋은 말씀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코자자의 조산구 박사님은 LG유플러스 계실 때 뵙고 처음 뵀는데 요즘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니 대뜸 “기사로 어떻게 돈을 법니까. 이제는 큐레이션해야지.”하셔서 뜨끔했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걸 어떡합니까 ㅠ.ㅠ)
좋은 컨퍼런스를 개최해주신 이한주 대표님과 신성욱 호스트웨이IDC 이사님, 초대해 주신 김유진 스파크랩 상무님도 바쁘신 중에 짧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 오라클에 계신 조성문님은 블로그 글을 통해서만 뵙다가 처음 인사를 드렸습니다. 블로그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에 연재하시는 좋은 글들로 국내에서도 블로그 팬들이 상당하죠.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하신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재미난 책을 집필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좋은 책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을 듯 합니다.
스피커 중에 칵테일 세션에 참석하지 않으신 분들도 꽤 있어서 좀 아쉬웠는데, 빈 린 샤오미 대표님한테 이것 저것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갔다가, 위 줄리안토라는 분이 린 대표를 붙잡고 놔주시질 않아서 잠깐 명함만 교환하고 제대로 말씀을 못나눴습니다(ㅠ.ㅠ). 나중에 알고 보니 줄리안토씨는 스파크랩스 제너럴 파트너였는데, 같은 중국계(아마도 중국계이신듯)분을 만나서 많이 반가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에 끼어들어서 잘은 모르지만 줄리안토씨가 zoom.us라는 서비스를 흥분된 목소리로 강추하고 계시더군요. 나중에 한 번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 밖에도 컨퍼런스에 훨씬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미처 다 인사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린 대표님과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불금에 선약이 있어 급히 자리를 떠야지만, 불과 한 시간여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석하신 분들 사이에 새로운 ‘스파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멋진 파티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컨퍼런스 당일에는 너무 부풀려진 기대 탓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트윗도 중간중간 올리기도 했지만, 이틀쯤 지나 후기를 정리하다보니 그래도 “이만한 컨퍼런스 또 없습니다”하는 생각이 드네요.
보통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는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거나, 투자나 기술, 마케팅 등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다루는 등 목적성이 분명한 기획으로 개최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요, 넥스트 컨퍼런스는 좀 달랐습니다.
넥스트 컨퍼런스의 홈페이지에 가 보면 “세계적인 인재들과 투자자 ,리더 그리고 창업자들이 최초로 한국에 모여 미래와 혁신에 대해 탐구하고자 합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참석자들이 영감을 얻고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으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소개가 돼 있는데요, 이 순수한 기획 의도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행사였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결코 스파크랩스나 스파크랩스의 창업자들, 투자를 받은 회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강연자로 나선 해외의 리더 및 인재들과 한국의 IT업계 및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던 넥스트 컨퍼런스의 취지에 박수를 보내며 넥스트 컨퍼런스가 2회, 3회 계속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덧. 스파크랩스에서 올 가을쯤 세 번째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국을 넘어 미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은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http://www.sparklabs.co.kr/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