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는 못살아!”… 2012 Y세대 실태조사

기상을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일명 ‘Y세대’라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시스코가 12월12일, 일명 ‘Y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성인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  ‘2012 시스코 커넥티드 월드 테크놀러지 보고서(2012 Cisco Connected World Technology Report, 이하 2012 CCWTR)’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사이트익스프레스와 함께 전세계 18개국에서 18세에서 30세 사이 대학생 및 직장인 1,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Y세대들이 주변 세계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중점을 뒀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Y세대의 90%는 최신 이메일, 문자 메시지 또는 소셜 미디어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빠져 나오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찾는다고 답했다. 이에 더해 Y세대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여길 정도로 삶의 중요한 요소이자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할 것으로 인식했다. 응답자의 40%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매우 초조하고 나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답할 정도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응답자의 97%가 스마트폰을 확인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소셜 미디어 등을 적극 활용하는 면에서 모두 전세계 평균을 넘어서는 응답률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스마트폰이 유독 늦게 출시된 편이지만, 스마트폰이 전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일상 속으로 파고 들고 있는 셈이다.

또한 보고서는 스마트폰, 센서, 비디오 카메라, 모니터 등 연결된 기기들이 매일 만들어내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신세대가 어떻게 생성하고, 접근하고, 보호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이처럼 신세대들이 적극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들에 더해, 가까운 미래에는 더 많은 기기, 센서, 심지어 살아있는 생물까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그에 따른 데이터의 크기와 가치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 ‘스마트폰 확인

설문 응답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4명 중 3명은 심지어 침대에서 빠져 나오기도 전에 스마트폰부터 확인한다고 답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SNS 등을 확인해 그 날의 해야 할 일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이 같은 조사 결과는 Y세대가 항상, 실시간으로 정보와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o 90%의 응답자가 매일 아침 등교나 출근 전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경우, 97%의 응답자가 스마트폰 확인으로 하루가 시작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5명 중 4명은 침대에서 빠져 나오기 전 스마트폰부터 확인한다고 답했다.

o 즉, 이들 Y세대는 향후 이전 세대들보다 더욱 정보 습득 및 피드백이 빠른 근로자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부터 때까지온라인

o 29%의 설문 응답자들은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하루에 몇 번이나 확인하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답했다.

o 또한 응답자 5명 중 1명은 이메일, 문자메시지, SNS 업데이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10분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으며, 3명 중 1명은 매 30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지, 스마트폰이 나를 사용하는 건지

o 응답자의 60%는 이메일, 문자메시지, SNS 업데이트 상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성별을 기준으로 답변을 분류해 본 결과 여성응답자의 85%, 남성응답자의 63%가 스마트폰을 강박적으로 확인한다고 답해 이러한 경향은 여성에게서 좀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에서는 응답자의 77%가 강박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o 응답자의 40%가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나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이들 응답자들의 60%가 그러한 강박관념을 느끼지 않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IT 전문가일수록 더더욱스마트폰 홀릭

o 설문에 참가한 IT 전문가 응답자 3명 중 1명은 스마트폰을 ‘언제나’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40%는 매 10분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화장실에도 들고 간다?

설문 응답자들은 일상 속 어떤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 사용을 통해 항상 ‘연결’돼 있고자 하는 Y세대들의 이러한 경향은, 언제 어디서나 업무 상황이나 이메일 확인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역시 흐리고 있다. 즉, 일하는 날과 쉬는 날, 일하는 낮 시간과 쉬는 밤 시간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

o 로맨스는 죽었는가? :전세계적으로, 응답자 4명 중 3명이 침실에서도 스마트폰을 쓴다고 답했다.

o 씻고 나오는 잊지 마세요 :응답자 1/3 이상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을 쓴다고 답했다.

o 손엔 숟가락, 나머지 손엔 스마트폰 : 전세계적으로, 응답자의 46%가 가족들이나 친구와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o 운전 스마트폰 사용 돼요~: 응답자의 20% 가량이 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앱이 없으면 스마트가 아니다

o 70%의 응답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일상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89%의 응답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일상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o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주로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27%만이 업무를 위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자주 쓰는 앱은 정해져 있다

매일 수천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마켓에 올라오고 또 다운로드 되고 있는 현상과는 달리, 정작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의 숫자는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o 전세계적으로 응답자의 60%가 일상적으로 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숫자가 10개 미만이라고 답했으며, 20%의 응답자만이 10개에서 25개의 애플리케이션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10개 미만의 앱을 상용한다는 응답자는 64%, 10개에서 25개의 앱을 상용한다는 응답자는 26%로 나타났다.

친구들을 만날 , ‘온라인 vs오프라인’

o 전세계적으로 응답자의 40%가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실제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더 많다고 답했다. 성별을 기준으로 답변을 분류해 본 결과, 남성응답자의 38%, 여성응답자의 29%가 실제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온라인에서 어울리는 시간보다 더 많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온라인에서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다고 답했다.

‘온라인에서의 나’와오프라인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사람?

o 응답자의 81%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믿고 있으며, 한국인 응답자의 경우 86%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사람들의 정체성은 다르다고 믿고 있다.

o 또한 전세계적으로 응답자의 33%가 사람들의 온라인 정체성과 오프라인 정체성은 매우 다르다고 답한 반면, 한국의 경우 응답자의 46%가 매우 다르다고 답했다.

o 그런 반면, 응답자 스스로의 온라인 정체성과 오프라인 정체성은 얼마나 일치하는지 물었을 때, 전세계적으로는 44%의 응답자가, 한국에서는 50%의 응답자가 ‘일치한다’고 답했다.

업무 처리할 , ‘스마트폰 vs 노트북

o 만약 한 가지 기기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전세계적으로는 스마트폰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와 노트북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는 각각 1/3로 비슷하게 나온 반면, 한국에서는 54%의 응답자가 스마트폰을 선택했고 4%의 응답자만이 노트북을 선택했다.

o 전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이 데스크톱PC보다 2배 더 선호하는 업무 처리용 기기로 드러났으며, 태블릿보다는 3배 더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상연결된’ 상태를 원하는 근로자들

개인 기기이든, 회사에서 지급한 기기이든, 하나의 단일한 모바일 기기로 업무를 처리하려는 Y세대들의 등장은, 기업 내 IT 담당자들에게 또 다른 도전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o 응답자 5명 중 2명은 회사의 IT 정책 상 회사가 지급한 기기를 업무 외적인 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으며, 거의 80%에 가까운 응답자가 이러한 정책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회사가 지급한 기기를 업무 외 용도로 사용하는 일이 금지돼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9%였으며, 응답자 5명 중 4명이 그러한 회사 정책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o 반면 설문에 참가한 IT 담당자들은 많은 근로자들이 회사 정책 준수에 소홀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얼마나 만연한지는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IT 담당자들의 절반 이상이 근로자들이 회사 기기를 업무 외 용도로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한국의 경우 33%의 IT 담당자들이 근로자들이 회사 IT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o 한편 66%의 응답자가 개인의 온라인 활동에 대해 회사가 ‘추적’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10 9명이온라인 쇼핑

o 응답자의 90%가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답했으며, 58%가 온라인 쇼핑 시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구매 후기 등에 의존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28%는 정기적으로 구매 후기를 참고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경우 응답자의 98%가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답했으며, 96%가 온라인의 구매 후기 등에 의존해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답했다.

o 57%의 응답자가 할인 행사 등의 정보를 받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공유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화번호나 주소 등 그 이상의 정보를 공유하는데 있어서는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끝없이 데이터를 생산해내는 Y세대

o 응답자의 90%가 공유나 저장의 목적으로 인터넷 사이트 등에 사진을 업로드 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62%가 영상을 업로드 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경우 각각 92%, 75%의 응답자가 사진, 영상을 업로드 한다고 답했다.

o 전세계적으로 87%의 응답자가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으며, 한국의 경우 그 비율이 88%로 나타났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10%의 응답자가 항상 페이스북을 업데이트한다고 답했으며, 하루에 여러 번 업데이트 한다는 응답자는 32%,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업데이트 한다는 응답자는 41%로 나타났다.

o 전세계적으로56%의 응답자가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으며, 21%의 사용자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트위터를 업데이트 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63%의 응답자가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었으며, 39%의 응답자가 하루에 한 번씩은 트위터를 업데이트 한다고 답했다.

한편, 시스코는 조사 결과와 함께 내용을 축악한 프리젠테이션 자료와 인포그래픽도 함께 공개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기사 상단 슬라이드쇼에서 볼 수 있으며 아래 링크에서 내려 받을 수도 있다. 함께 공개된 인포그래픽은 아래 첨부했다.

▶ 시스코 2012 CCWTR 자료 내려 받기 링크

UPDATA : 시스코 2012 CCWTR 슬라이드 자료 가운데 한국 시장에만 초점을 맞춘 슬라이드를 입수했습니다. 맨 위에 공개된 글로벌 슬라이드 자료와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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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2012 CCWTR Focus on : Korea 슬라이드

▽ 시스코 2012 CCWTR 인포그래픽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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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코어 스마트폰의 현재와 미래

이 글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모바일 트렌드 매거진에 기고하기 위해 6월 초에 작성한 글 원문입니다. NIPA 모바일 트렌드 매거진 이번 호는 다음주 쯤 발간될 예정입니다.

여름 스마트폰 시장은 쿼드코어로 후끈

듀얼코어를 살까, 최신 쿼드코어를 사야 할까? 컴퓨터 얘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에도 쿼드코어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해외 시장에는 이미 상반기부터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하나 둘 선보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6월부터 삼성전자 갤럭시S3를 시작으로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속속 출시될 예정이다.

1GHz대 싱글코어 스마트폰이 높은 사양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이 불과 2년 전인 것을 생각해보면 모바일 프로세서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 지를 실감할 수 있다. 듀얼코어 프로세서가 보편화된 이후 한동안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요소가 화면 크기와 해상도 등으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출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프로세서 경쟁이 불붙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samsung-galaxy-s3-usa-release

국내 첫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될 삼성전자 갤럭시S3

언제부터 휴대폰에서 프로세서가 중요해졌을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일반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아무도 휴대전화에 탑재되는 프로세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해진 사양에서 제조사가 내장한 제한된 기능만 이용했기 때문에 굳이 소비자가 더 빠른 하드웨어 성능을 필요로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일반 소비자들이 프로세서 성능을 따지는 것은 몇 년을 주기로 새로운 운영체제와 고사양의 게임이 출시되는 PC 시장에 국한된 얘기였다.

그러나 소비자가 직접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조금씩 프로세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1년에 한 모델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해 제공하는 애플 아이폰과 달리, 빠른 속도로 아이폰을 추격해야 했던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프로세서의 컴퓨팅 파워가 더욱 중요했다. 빠른 속도로 다양한 단말기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운영체제를 하드웨어에 최적화해서 담아내기가 어려웠고, 성능 면에서나 마케팅 측면에서나 빠른 프로세서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그 틈새를 빠르게 공략한 회사가 퀄컴이었다. 퀄컴은 1GHz라는 상징적인 클럭 속도를 선점하는 동시에 ‘스냅드래곤(snapdragon)’이라는 브랜드를 히트시키며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1GHz급 스냅드래곤은 구글 넥서스원을 비롯해 HTC 디자이어와 HD2,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 X10 등 2010년에 인기를 끌었던 주요 스마트폰에 잇달아 탑재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고, 통신칩과 프로세서를 통합한 ‘윈칩’ 설계로 모바일 시장에서 비교 우위를 가져갔다.

퀄컴이 통신 원천기술을 가지고 통신 모뎀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하나로 통합한 원칩 설계에 주력했다면,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텍사스 인스투르먼츠(TI) 등은 프로세서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추며 퀄컴을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엔비디아와 TI는 퀄컴에 한 발 앞서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상용화하며 역공에 나섰고, 삼성전자도 엑시노스(Exynos)라는 모바일 프로세서 브랜드를 런칭하고 갤럭시S2 등 자사 제품을 중심으로 탑재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넓혀 나갔다.

exynos4 and tegra3

삼성전자 엑시노스4 프로세서(왼쪽)와 엔비디아 테그라3

올 초에 열린 CES 2012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에서는 쿼드코어 프로세서와 이를 탑재한 신제품이 대거 공개되며 올 여름 쿼드코어 스마트폰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모바일 쿼드코어 프로세서는 엔비디아의 테그라3(Tegra 3), 삼성전자의 엑시노스4 쿼드 시리즈, TI의 OMAP5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중국 화웨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쿼드코어 프로세서 K3V2를 공개하며 고사양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출사표를 내밀었다.

이와 달리 스냅드래곤으로 초기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했던 퀄컴은 쿼드코어 프로세서의 상용화가 다소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신 듀얼코어 프로세서와 LTE 통신칩을 하나로 통합한 스냅드래곤 S4 시리즈로 LTE 듀얼코어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은 싱글코어 시절의 클럭 속도 경쟁에서 최근에는 듀얼코어에 이어 쿼드코어에 이르기까지 코어수를 늘리는 쪽으로 경쟁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 가운데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는 주요 제품은 아래 표와 같다.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장단점은

쿼드코어 스마트폰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속도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하드웨어 사양이 제한적이었던 탓에 같은 하드웨어 사양을 갖춰도 제조사의 운영체제 최적화 능력에 따라 성능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쿼드코어 스마트폰은 하드웨어 성능으로 이러한 문제를 대부분 커버해줄 것이다. 스마트폰과 PC의 성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제품은 RAM도 2GB까지 늘린다고 하니 웬만한 구형 노트북 부럽지 않은 사양이다.

스마트폰에서는 단순히 성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전력 소비를 낮춰서 배터리 지속시간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실제로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모바일 칩셋 업체들의 발표를 보면 쿼드코어 프로세서에서 전력 소비 문제는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반도체 공정이 40nm에서 최대 28nm 수준으로 정밀해지면서 코어당 전력 소비가 다소 줄어들었고, 상황에 따라 4개의 코어를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도입해 전력 소비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엔비디아 테그라3의 경우에는 4개의 코어 외에 배터리 절약용 저전력 코어를 하나 더 추가해 음악 재생 등 간단한 작업에서는 저전력 코어만 가동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전력을 더욱 낮추는 설계를 적용하기도 했다. 퀄컴은 쿼드코어 경쟁에서 한발 뒤졌지만 향후 출시할 제품에서 4개의 코어를 각기 다른 클럭 속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도입해 소비 전력을 더욱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nvidia tegra 3 architecture

엔비디아 테그라3 프로세서는 1개의 저전력 코어를 추가하고 총 5개의 코어를 유동적으로 사용해
전력 소비를 낮추는 설계가 적용됐다

반대로 LTE 지원 여부는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LTE를 상용화한 선진 시장에서는 통신사들이 3G 스마트폰보다 LTE폰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과는 달리 지금까지 출시된 쿼드코어 스마트폰은 대부분 LTE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LG-Optimus-4X-HD-P880-2LTE 스마트폰은 데이터 통신은 LTE로, 음성통화는 3G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두 개의 채널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기술적인 과제를 앉고 있다. 초기 LTE 스마트폰에서는 3G 모뎀과 LTE 모뎀, AP를 각각 별도로 탑재했기 때문에 배터리 지속시간이 충분치 못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배터리 관리 기술이 발전하고 퀄컴이 LTE와 3G 모뎀,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하나로 통합한 스냅드래곤 S4를 출시하는 등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쿼드코어에서는 LTE를 지원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LTE와 쿼드코어를 통합한 퀄컴의 원칩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은 이르면 올 연말부터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도 2013년 출시를 목표로 AP와 통신칩을 통합한 프로세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가 갤럭시S3 제품 중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 시장에 쿼드코어 프로세서에 LTE 모뎀을 별도로 탑재한 모델을 선보인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쿼드코어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모바일 환경에서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활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 즉 쿼드코어의 킬러 서비스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웹 서핑이나 메일 확인, SNS와 모바일 메신저 등 스마트폰에서 많이 활용하는 기능을 쓰기에는 듀얼코어 프로세서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 해도 3D 게임 등 고사양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제외하면 4개의 코어를 모두 활용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을 할 때에는 쿼드코어의 성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향후 쿼드코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다양한 활용법을 찾아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쿼드코어 킬러 서비스로 무엇을 꼽아야 할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동안 쿼드코어의 킬러 앱은 향후 출시될 고사양 3D 게임 정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실 고사양의 게임을 즐기지 않는 다수의 소비자들은 당분간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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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C가 해외 시장에 먼저 선보인 쿼드코어폰 One X, 국내에도 올 여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하반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쿼드코어 제품이 각광을 받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 소비자들은 저가폰보다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제조사와 통신사도 갤럭시S3를 필두로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내세울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쿼드코어’라는 이름이 가지는 마케팅 파워가 십분 발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로는 쿼드코어 2GHz 급 프로세서가 출시되는 등 프로세서 성능이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스마트폰 시장도 PC 시장처럼 단순한 클럭 속도나 코어수 경쟁이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단말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일반적인 기능만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는 듀얼코어 이하의 제품을 선택하고, 고사양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만 쿼드코어 이상의 제품을 구입하는 등 PC 시장처럼 가격과 이용 목적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스마트폰 시장도 쿼드코어를 앞세운 하이엔드 시장과 듀얼코어 이하의 보급형 시장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을 웃돌고 있고 많은 않은 소비자들이 단말기 할부금과 통신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듀얼코어 수준의 충분한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저렴한 가격으로 떨어진다면 보급형 시장이 예전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쿼드코어 프로세서는 스마트폰을 넘어 안드로이드 태블릿PC와 윈도우8 태블릿PC 등 더 강력한 성능을 필요로 하는 모바일 기기에서 널리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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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노트북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모토로라 랩독

또한 쿼드코어의 컴퓨팅 파워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 액세서리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모토로라가 아트릭스와 함께 선보였던 랩독과 멀티미디어독이나, 최근 아수스가 공개한 패드폰 같은 제품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에 큰 스크린을 끼워 태블릿PC나 노트북처럼 활용하거나, TV에 연결해 셋톱박스나 스마트TV처럼 활용하는 등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단순한 휴대폰을 넘어 모바일 컴퓨팅의 허브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쿼드코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멀티 로그인이나 운영체제 가상화도 보편화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스마트폰으로 집에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다가 출근해서는 윈도우폰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은 제조사들이 하나의 운영체제를 최적화해서 탑재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제공하기에도 버거워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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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스에서 공개한 패드폰. 스마트폰에 스크린을 끼워 태블릿처럼 이용할 수 있다

요즘 어떤 스마트폰이 잘 나가나요?

휴대폰을 바꾸기 위해 통신사 매장을 방문한 A씨. 다짜고짜 직원한테 이렇게 물어본다.

“요즘 어떤 스마트폰이 잘 나가나요?”

그 말을 들은 매장 직원은 “요즘엔 B폰이 대세죠~”라며 강추한다. 십중팔구 이 말에는 “B폰을 사셔야 제가 제일 많이 남길 수도 있거든요.”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그렇다고 B폰이 대세라는 말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통신사가 보조금을 가장 통 크게 쓰는 제품, 즉 대리점이 가장 많이 남겨먹을 수 있는 제품이 곧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되기 때문이다.

최신 유행하는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는 A씨의 욕망과 특정 제품의 판매량을 늘리려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욕망, 그 과정에서 이익을 많이 보려는 매장 직원의 욕망이 하나로 수렴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다음날 점심 식사 시간. A씨는 자랑스럽게 새로 구입한 최신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회사 동료들이 관심을 보인다. “오~ 이게 새로 나온 B폰이야?”, “역시 A씨는 최신 유행에 민감하다니까~”, “나도 곧 B폰으로 바꿀 생각인데 좋은 어플 있으면 추천 좀 해줘.”

A씨는 휴대폰 참 잘 산 것 같아 으쓱하다. 만족스러운 구매다. 모두가 윈-윈한 것처럼 보인다. 퇴근길 A씨는 쓸만하고 회사 동료에게 추천해줄 만한 어플을 찾아본다. 모 전자회사 전 부회장이 스마트폰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대한민국은 그렇게 2년 만에 전국민의 절반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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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T>

얼리어답터의 나라

과거 토종 기업들이 국내 휴대폰 시장을 틀어쥐고 있던 탓에 한국 시장에 도전했던 해외 업체들은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 철수해야 했다. 그런데 2010년 한국에 스마트폰 열기가 세게 불면서 다시 국내 시장을 두드리는 해외 업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출시 행사차 방한한 모 기업의 임원에게 다시 한국 시장에 도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의 답변은 대충 이랬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단히 얼리어답터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전국민이 채 2년이 안돼서 휴대폰을 바꿉니다. 그것도 고가의 제품이 더 잘 팔립니다. 현재 한국은 전세계에서 스마트폰이 가장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국가이고 인구 규모에 비해 훨씬 큰 시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국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여기고 있습니다. 얼리어답터인 한국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으면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이 얼리어답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스마트폰 이전에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 타이틀을 스스로 붙일 수 있었던 데에는 국내 전자 업계의 눈부신 성장과 더불어 초고속 인터넷의 빠른 보급이 한 몫을 했다.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속도와 보급률 면에서 최상위권이라는 것은 명백한 팩트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 과정과 현황을 연구한 해외 리포트까지 발표될 정도였다. 한국인들은 그렇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을 가정에 설치했다.

유선 인터넷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명제는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밖에서는 역시 한국인은 얼리어답터라며 추켜세웠다.

정말 그럴까? 대체 한국 사람들에게 언제부터 얼리어답터적인 성향이 생긴 것일까? 유선 인터넷과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였을까? 컬러TV가 보급된 80년대부터일까? 금성사의 첫 흑백TV 경쟁률이 50대 1에 달했다는 60년대부터였을까? 설마 6.25 직후나 일제시대에 이미 얼리어답터였을까? 과연 얼리어답터가 맞기는 할까?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초고속 인프라가 집집마다 깔리고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 과연 우리가 얼리어답터이기 때문일까? 혹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 드라이브나 ICT 업계를 주무르는 국내 대기업들의 강력한 마케팅 때문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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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lickr.com, tonymadrid님이 일부 권리를 보유함 CC BY-NC-ND>

스마트폰과 유행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특정 스마트폰이 히트하는 방식이 청소년들 사이에 특정 브랜드가 유행하는 방식이나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가 각광받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입한 휴대폰과 브랜드에 상당한 애착을 보인다. 누군가 자신의 선택을 비판하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휴대폰을 칭찬하면 우쭐해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구입했던 브랜드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면, 자신의 휴대폰이 몇 달 만에 구닥다리 신세가 될 것을 우려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폰 구매가 단순히 제품의 선택을 넘어, 하나의 패션이자 자기표현의 단계로 올라섰고 일종의 유행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A씨가 휴대폰 매장에서 먼저 최신 유행하는 스마트폰부터 찾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뤄볼 때 ‘한국인은 얼리어답터다’라는 주장은 ‘한국인은 유행에 민감하다. 일부 IT 제품도 유행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라고 바꿔쓰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 진출을 모색하는 외국 기업이 ‘한국인은 얼리어답터’라고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순간 망하기 딱 좋다. 스마트폰이 불티나게 팔려도 외국산 스마트폰(아이폰은 논외로 치고)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에게 ‘한국인은 얼리어답터’라고 답했던 그 임원이 속한 기업도 여전히 죽을 쓰고 있다.

반면 국내 통신사와 제조업체들은 국내 소비자들이 얼리어답터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듯하다. 휴대폰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선심 쓰는 양 보조금을 팍팍 뿌리고 2년 약정으로 옭아맨 후 2년 후에 또 다시 보조금을 안기는 전략은 대다수 소비자가 얼리어답터라고 판단한다면 도저히 펼 수 없는 전략이다. 연예인 협찬과 방송, 영화 PPL, 여성 잡지 공략 등 휴대폰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도 점점 더 유행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행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유행을 좇는 것은 초과 소비를 유발해 덩치를 불리려는 자본이 우리 내부에 주입한 욕망이다. 물론 상품도 자기 표현의 한 방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자기 표현은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반대로 자본은 ‘너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눈 감고 유행을 좇으라’고 속삭인다.

스마트폰이나 SNS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이 유행을 좇아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한 새로운 기능, 새로운 기기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당신은 영원히 따라잡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행의 급격한 변화를 진보라고 할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진보는 새로운 유행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제조사가 던져준 대로 이용하는 대신 사용자가 제각기 본인이 필요로 하는 도구로 개조할 수도 있게 됐다는 점에 있다. 내가 ‘도구는 도구다’라고 외치면서 ‘스마트폰과 SNS가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땐 이렇게 묻는 게 어떨까. “어떤 휴대폰이 잘 나가나요?” 대신 “이러이러한 기능이 필요한데 어떤 휴대폰이 적합할까요?”라고. 만약 대리점 직원이 만족스러운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면 저한테 물어보셔도 좋다. 아는 한도에서 친절히 상담해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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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내가 블로그를 새로 만들자마자 ‘도구가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는 주제로 연재를 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뒀다. 그것은 아마도 최근 부각된 ‘스마트폰이 우리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주범이고, SNS가 우리에게 정보의 과잉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담론이 내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 빅뱅의 시대에 스마트 기기와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을 짚고 넘어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는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주장에 내가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아마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90년대 후반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는 시점이었다. 통신사들은 학생용 요금제를 출시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녀와 연락이 어려웠던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휴대폰을 사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교생이 학교에 단 두 대 있는 공중전화로 부모님과 안부를 주고 받아야 했다. 쉬는 시간이면 공중전화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풍경이 연출됐다.

학생들 사이에 휴대폰이 조금씩 보급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따끔씩 수업 중에 벨소리가 울렸고 그때마다 수업 분위기가 흐려졌다. 자연스럽게(?) 학내 규정에 두발과 복장 단속에 이어 휴대폰 단속이 추가됐다.

문제는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이용하다가 걸린 학생의 휴대폰 뿐만 아니라, 기숙사 방을 구석구석 뒤져서 얌전히 보관하고 있던 휴대폰까지 압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휴대폰은 점점 음지로 숨어들었지만, 반대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수업을 멈추고 당당하게 전화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휴대폰 에티켓이 자리잡지 않은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에티켓을 지켜서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조차 금지된 반면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도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는 모순된 상황은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뚜껑을 열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18살의 나는 치기어린 과격한 방법(?)으로 학내에서 휴대폰 이용 자유화를 주장했고(여기에 두발 자유화까지 물고 늘어졌다), 하마터면 학교를 떠나게 될 뻔했다.

다행히 여러 선생님들이 나를 제자로 품어주신 덕분에 사태는 잘 마무리됐다. 한편으론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일부 선생님들을 교사가 아닌 인간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와 교훈도 많이 었었다. 생전 처음 자식이 다니는 학교를 들락거리게 된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이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은 보너스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깊게 각인된다. 당시 사춘기 고등학생의 문제 의식을 이제와서 30대의 마음으로 차분히 옮겨보면, 앞으로 휴대폰이 점점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 것이 뻔한데 교육 현장에서조차 올바른 에티켓을 가르치키는 커녕 무조건 쓰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10년이 훌쩍 넘게 지나 스마트폰과 SNS의 부작용을 집중 보도하는 일부 미디어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도한 알러지를 일으키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비발디 <사계>를 들으며 뉴욕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출처 : flickr.com 저작권 :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Ed Yourdon님이 일부 권리를 보유함)

“스마트폰과 SNS가 우리의 인간됨을 갉아먹고 있으니 인간은 기계에서 해방될 지어다”라고 외치는 것은 ‘쿨’해 보인다. 이 주제는 흔히 말하는 ‘먹히는’ 기사고, 그 동안 기사와 광고를 통해 ‘스마트폰 사라’, ‘SNS 써봐라’하고 부추겼던 그들이 마치 중립적인 입장인 양 균형을 취하게 해주는 좋은 방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스마트폰 사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에서 해방되라’로 끝맺는 동안, 어떻게 해야 스마트폰과 SNS를 현명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주목을 했던가.

나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의 회복은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은 대화의 원인이 아니라 관심의 결과다.

SNS도 마찬가지다. SNS의 속성이 우리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필요성을 못느끼면서도 유행이라니까 목적 의식 없이 의무감에 따라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단지 이 도구가 나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진짜 ‘해방’은 도구를 집어던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도구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굳이 문제의 원인을 따지자면 일개 도구에 불과한 스마트폰이나 SNS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까지 스마트폰을 사도록 부추기는 통신사의 마케팅 행태나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처럼 부추기는 미디어, 그리고 도구를 도구로 보지 못하고 유행 따라 휘둘리는 당신에게 있다.

만일 여러분이 1년간 인터넷을 끊겠다고 선언한 더버지의 폴 밀러 처럼 과감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SNS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왜 이런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지 목적을 뚜렷히 하자. 남들이 쓰는 방식을 의무감에 따라하지 말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 도구가 나를 위해 일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