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내가 블로그를 새로 만들자마자 ‘도구가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는 주제로 연재를 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뒀다. 그것은 아마도 최근 부각된 ‘스마트폰이 우리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주범이고, SNS가 우리에게 정보의 과잉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담론이 내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 빅뱅의 시대에 스마트 기기와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을 짚고 넘어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는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주장에 내가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아마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90년대 후반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는 시점이었다. 통신사들은 학생용 요금제를 출시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녀와 연락이 어려웠던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휴대폰을 사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교생이 학교에 단 두 대 있는 공중전화로 부모님과 안부를 주고 받아야 했다. 쉬는 시간이면 공중전화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풍경이 연출됐다.
학생들 사이에 휴대폰이 조금씩 보급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따끔씩 수업 중에 벨소리가 울렸고 그때마다 수업 분위기가 흐려졌다. 자연스럽게(?) 학내 규정에 두발과 복장 단속에 이어 휴대폰 단속이 추가됐다.
문제는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이용하다가 걸린 학생의 휴대폰 뿐만 아니라, 기숙사 방을 구석구석 뒤져서 얌전히 보관하고 있던 휴대폰까지 압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휴대폰은 점점 음지로 숨어들었지만, 반대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수업을 멈추고 당당하게 전화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휴대폰 에티켓이 자리잡지 않은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에티켓을 지켜서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조차 금지된 반면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도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는 모순된 상황은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뚜껑을 열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18살의 나는 치기어린 과격한 방법(?)으로 학내에서 휴대폰 이용 자유화를 주장했고(여기에 두발 자유화까지 물고 늘어졌다), 하마터면 학교를 떠나게 될 뻔했다.
다행히 여러 선생님들이 나를 제자로 품어주신 덕분에 사태는 잘 마무리됐다. 한편으론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일부 선생님들을 교사가 아닌 인간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와 교훈도 많이 었었다. 생전 처음 자식이 다니는 학교를 들락거리게 된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이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은 보너스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깊게 각인된다. 당시 사춘기 고등학생의 문제 의식을 이제와서 30대의 마음으로 차분히 옮겨보면, 앞으로 휴대폰이 점점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 것이 뻔한데 교육 현장에서조차 올바른 에티켓을 가르치키는 커녕 무조건 쓰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10년이 훌쩍 넘게 지나 스마트폰과 SNS의 부작용을 집중 보도하는 일부 미디어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도한 알러지를 일으키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비발디 <사계>를 들으며 뉴욕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출처 : flickr.com 저작권 : Ed Yourdon님이 일부 권리를 보유함)
“스마트폰과 SNS가 우리의 인간됨을 갉아먹고 있으니 인간은 기계에서 해방될 지어다”라고 외치는 것은 ‘쿨’해 보인다. 이 주제는 흔히 말하는 ‘먹히는’ 기사고, 그 동안 기사와 광고를 통해 ‘스마트폰 사라’, ‘SNS 써봐라’하고 부추겼던 그들이 마치 중립적인 입장인 양 균형을 취하게 해주는 좋은 방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스마트폰 사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에서 해방되라’로 끝맺는 동안, 어떻게 해야 스마트폰과 SNS를 현명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주목을 했던가.
나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의 회복은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은 대화의 원인이 아니라 관심의 결과다.
SNS도 마찬가지다. SNS의 속성이 우리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필요성을 못느끼면서도 유행이라니까 목적 의식 없이 의무감에 따라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단지 이 도구가 나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진짜 ‘해방’은 도구를 집어던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도구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굳이 문제의 원인을 따지자면 일개 도구에 불과한 스마트폰이나 SNS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까지 스마트폰을 사도록 부추기는 통신사의 마케팅 행태나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처럼 부추기는 미디어, 그리고 도구를 도구로 보지 못하고 유행 따라 휘둘리는 당신에게 있다.
만일 여러분이 1년간 인터넷을 끊겠다고 선언한 더버지의 폴 밀러 처럼 과감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SNS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왜 이런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지 목적을 뚜렷히 하자. 남들이 쓰는 방식을 의무감에 따라하지 말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 도구가 나를 위해 일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