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구뉴패드 추모 소설] 아이패드 3세대는 왜 단명했나

121119 bye_ipad3아이패드 3세대(당시 정식명칭 : The new iPad, 이하 ‘뉴패드’)는 개인적으로 유독 애착이 가는 기기다. 올 봄 블로터닷넷을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공들여 썼던 글이 뉴패드에 대한 리뷰 시리즈였다.

3월19일이었다. 운 좋게도 미국에 최초로 출시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뉴패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뉴패드에 새롭게 추가된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더불어 국내 LTE 주파수 호환 문제와 발열 논란으로 국내외 언론이 시끄럽게 달아오르고 있을 때였다. 일찌감치 제품을 입수한 담당 기자로서, 과연 국내에서 LTE를 이용할 수 있을지, 정말 일부 외신 인용보도처럼 발열이 심각한 수준인지 독자들에게 전해드려야 할 내용이 많았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뉴패드를 끼고 지내면서 시리즈로 리뷰 기사를 작성했다.

지금도 당시에 독자들이 SNS와 댓글을 통해 남겨주신 반응을 잊지 못한다. 이후 꽤 오랜 시간 기자 일을 쉬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분야로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디퍼스를 통해 복귀하게 된 것도, 그 때 이후로 수시로 SNS를 통해 “왜 요즘은 기사 안 쓰냐”며 잊지 않고 재촉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이다.

퇴사 이후 긴축 재정(?) 상태에서 가장 먼저 지갑을 털어간 기기도 뉴패드였다. 회사에서 지급받았던 노트북과 기기들을 반납하고 나니 저렴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컴퓨팅 기기가 필요했다. 아이패드 3세대는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노트북을 구입하기 전까지 훌륭하게 개인적인 웹 서핑과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져줬다. 레티나의 위용을 한껏 뽐내며 눈을 버리게 해준 것은 보너스다.

그랬던 뉴패드가 이달 아이패드 4세대(정식명칭 : 아이패드 레티나 디스플레이, iPad with Retina display) 출시와 함께 불과 7개월 만에 수명을 다했다. 지난 10월23일 신제품 발표 행사를 보다가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에 이어 아이패드 4세대까지 꺼내 들자 슬슬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뉴패드가 벌써 뒷방으로 밀려나다니!” 발표 전에도 아이패드 4세대에 대한 루머는 있었지만 이번 행사가 아니라 내년 봄 쯤에 발표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https://twitter.com/ezoomin/status/260802230947573761

아이패드 4세대 발표 당시 멘붕에 빠졌다 

뉴패드 단종 소식에 멘붕 증상을 겪은 것은 기자 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는 아이패드 3세대 사용자들의 한탄 섞인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애플이…” 이젠 더 이상 뉴패드로 부를 수 없다며 ‘구뉴패드’라는 새로운 별명도 붙여졌다.

https://twitter.com/ChiC_hi/status/263472869856661504

https://twitter.com/DrunkenSJ/status/264368806762258432

https://twitter.com/lemonpig88/status/267822981529624576

https://twitter.com/haewoon/status/264383030712492032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께름칙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보다 저렴한 아이패드 미니가 나왔는데 아이패드2는 대체 왜 살려둔 것일까? 아이패드 제품군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났는데 앞으로도 계속 유지가 될까? 만약 아이패드 4세대 외에 보다 저렴한 9.7인치 라인업이 필요했다면 왜 뉴패드가 아니라 아이패드2였을까? 뉴패드의 이름은 왜 The new iPad였고, 왜 아이패드 4세대는 iPad with Retina display가 된 것일까? 레티나는 뉴패드에도 있었는데?

해상도에 대한 실망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패드 미니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하지 않은 것일까? 소문대로 내년에는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모델이 나올까? 그럼 갓 출시된 아이패드 미니는 또 몇 달 만에 ‘구뉴미니’가 될 운명일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한국에 앉아서는 딱히 의문을 풀 만한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역시 미래에 대한 최고의 설명서는 과거에 있나 보다. 요즘 들어 애플의 미래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아 스티브 잡스 전기를 다시 들춰보고 있었다. 90년대 후반 애플이 몰락하던 시점부터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던 구절을 읽다가 무릎을 탁 쳤다. 일명 스티브 잡스의 사분면 도표 부분이 소개되는 부분이었다.

1997년 iCEO로 컴백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되살릴 방안으로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당시 10여 개에 달하던 맥킨토시 제품에 대한 보고를 받던 잡스는 직원들에게 되물었다. “어떤 걸 내 친구들한테 사라고 하면 좋을까?” 간결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잡스는 제품의 70%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얼마 후 제품 전략 회의에서 그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가 가로선과 세로선을 긋고 이렇게 생긴 표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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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llaboutstevejobs.com / theregister.co.uk 재인용>

4개의 제품에 집중하고 나머지 제품들을 정리해버린 스티브 잡스의 결단은 애플 회생의 발판이 된다. 잡스가 복귀하던 해에 애플은 10억4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존폐의 위기에 몰려있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3억9백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비록 이제 잡스는 없고 애플의 제품 영역은 훨씬 넓어졌지만, 이후에도 애플은 제품 라인업을 꾸리는 데 아래와 같은 표를 그리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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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ilyfinance.com>

그렇다면 한 번 소설을 써보자. 만약 애플이 내년 초에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출시하면서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고 해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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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소설을 쓰는 김에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출시된다면 시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모바일 제품 주기가 가을로 넘어간 상황에서, 애플로서는 상반기에 선보일 신제품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문제는 만약 내년 상반기에 새 아이패드 미니가 출시된다면 올해 아이패드 미니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구뉴패드 사용자들처럼 또 다시 멘붕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패드 미니가 여전히 현역이 되고 상위 모델로 레티나 디스플레이 모델이 출시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아이패드 미니보다 높고 아이패드 4세대와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사양을 갖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A5X(아이패드 3세대 탑재)와 A6(아이폰5 탑재), A6X(아이패드 4세대 탑재) 가운데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충분히 구동하면서 배터리 지속시간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프로세서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대가 관건인데, 프로용 제품으로 포지셔닝 하면서 아이패드 제품군 가운데 빈 가격대인 429달러로 출시하거나, 가격 공세를 펼치고 있는 안드로이드 태블릿에 대응하기 위해 329달러로 출시하고 기존 아이패드 미니의 가격을 인하하는 두 가지 방안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프로세서와 새 레티나 디스플레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얇으면서도 빵빵한 배터리 등이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가격을 좌우할 것이다.

혹자는 아이패드 제품군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아이팟 터치 제품군과 상위 아이패드 제품군을 자기잠식(Cannibalization)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지금껏 애플이 자기잠식을 걱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아이폰은 아이팟을 잠식할 우려가 있었고, 아이패드는 맥을 잠식할 우려가 있었다.

자기잠식은 수익성이 낮은 제품이 수익성이 높은 제품을 잠식할 때 문제가 된다. 현재 애플이 하고 있듯이 각 제품군이 모두 충분한 마진율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신제품을 선보인다면 자기잠식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출이 다변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군다나 태블릿 시장과 같이 급격히 성장하는 시장에서는 자기잠식은 커녕 시장 파이를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안드로이드 태블릿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 가격을 넥서스7 수준으로 낮게 책정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애플이 내년 상반기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함께 기존 아이패드2를 대체할 새 아이패드를 선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아이패드2가 완성도 높은 모델이긴 하지만 내년 하반기까지 현역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노병이다. 상위 제품으로 레티나 모델이 있기 때문에 새 아이패드는 아이패드2처럼 레티나를 탑재하지 않은 채 성능만 향상될 것이다. 가격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한 채 ’2′ 자를 떼고 구뉴패드의 ‘The new iPad’ 이름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아이패드 제품군은 (The new) iPad mini / iPad mini with Retina display / (The new) iPad / iPad with Retina display 네 가지 모델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소설을 한 번 써본다.

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글은 어디까지나 구뉴패드의 단명을 추모하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애플이 소설대로 아이패드 제품군을 갖춰 나간다면, 구뉴패드는 레티나 탑재에서 LTE 지원, 커넥터 변경까지 애플 제품에 큰 변화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아이패드 제품군을 완성하는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해낸 셈이다.

아이패드 라인업을 완성하기 위해 짧은 시간 ‘몸빵’을 하고 우리 곁을 떠나는 구뉴패드야, 그동안 수고 많았다. 앞으로 뉴뉴패드와 더 자주 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렴. 너는 언제까지나 최초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패드로 기억 속에 남을 거야. 이젠 안녕.